지난 10년동안 매장을 운영해온 저를 포함해서 매장을 임차해서 월세를 내면서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들의 큰 고민거리는 건물주와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하느님 위에 있는 건물주라지만 매년 월세를 올리거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면 스트레스를 받는게 당연하죠. 특히 자영업자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매장 시설 수선의무가 누구에게 있나?’ 입니다.
오늘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건물주와 얼굴 붉히지 않고 수선 비용을 명확하게 가려내는 법적 기준을 총정리해 보았습니다. 물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정리되지는 않겠지만 대략적인 윤곽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건물의 핵심 구조는 건물주가, 소모품은 임차인이 부담합니다
상가 임대차 계약에서 매장 시설 수선의 책임은 “건물의 주요 구성 부분이자 대규모 수선이 필요한 구조적 문제는 임대인(건물주)이, 임차인의 과실이나 사용으로 인한 소규모 소모품 교체는 임차인(세입자)”이 부담하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원칙입니다. 민법 제623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상가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해 줄 적극적인 ‘수선의무’를 집니다.
따라서 한파로 인한 매장 외벽 배관 동파, 건물 노후화로 인한 전기 배선 누전 등은 건물주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합니다. 반면 관리 부실로 인한 내부 동파, 출입문 도어록 건전지나 힌지 같은 소모품 교체는 임차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수도 배관 동파 사고
한파가 몰고 온 수도 배관 동파라는 날벼락
몇 년 전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가공식품 매장 문을 열었는데 바닥이 한강이 되어 있더군요. 매장 구석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 보니, 벽면 안쪽에 있던 수도 배관이 꽁꽁 얼어붙다 못해 터져버린 상태였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 매뉴얼대로 매장을 깔끔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는데, 건물 내부도 아닌 벽면 깊숙한 곳의 배관이 터지니 정말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급하게 설비 업체를 불러 수리를 마쳤지만, 진짜 전쟁은 그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건물주와의 지루한 비용 분담 논쟁과 마음의 상처
수리비 영수증을 들고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연히 건물의 배관 문제이니 비용을 대줄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습니다. “사장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배관이 터지냐, 매장 내부 수도를 틀어놓지 않은 사장 책임이다”라며 오히려 저를 타박하더군요. 며칠 동안 법적 조항을 찾아보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후로는 매장에 사소한 고장이 생겨도 건물주에게 수선 요청을 하기가 꺼려지더군요. 어지간하면 제 돈으로 고치고 마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 수도 배관, 출입문, 전기 배선 등 수선의무 소재 명확히 구분하는 방법
수도 배관 동파의 수선의무 주체 판단법
수도 배관이 터지면 무조건 임차인 책임도, 무조건 건물주 책임도 아닙니다. 핵심은 ‘발생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와 ‘배관의 위치가 어디인가’입니다.
- 건물주 부담: 매장 외벽 내부의 공용 배관이 노후화되거나 보온 조치가 미흡하여 터진 경우, 혹은 건물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한파를 견디지 못한 경우는 건물주가 수리해야 합니다.
- 임차인 부담: 임차인이 겨울철에 매장 문을 열어두고 퇴근했거나,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에 수도를 조금도 틀어놓지 않는 등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매장 내부 배관이 얼어 터졌다면 임차인이 비용을 100% 부담해야 합니다.
매장 출입문 고장 및 유리창 파손의 수선의무 주체 판단법
손님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출입문과 쇼윈도 유리창도 분쟁이 잦은 영역입니다.
- 건물주 부담: 건물의 지반이 내려앉아 문틀이 뒤틀리면서 출입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경우, 혹은 태풍이나 강풍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전면 유리창이 파손된 경우는 대규모 수선에 해당하므로 건물주가 고쳐주어야 합니다.
- 임차인 부담: 손님들이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마모되는 출입문 하단의 플로어 힌지(유압 장치), 손잡이 파손, 도어록 고장 등은 소규모 수선이자 소모품에 해당하므로 임차인이 부담합니다. 만약 프랜차이즈 매장 특성상 특정 디자인의 문을 고집하다 고장이 났다면 이 역시 임차인의 몫입니다.


전기 배선 누전 및 차단기 내려감의 수선의무 주체 판단법
가공식품 소매점을 운영하면 냉장·냉동고를 24시간 가동하기 때문에 전력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 건물주 부담: 상가 건물 자체의 메인 배전반 고장, 건물 벽면 내부를 지나는 메인 전선의 노후화로 인한 누전 및 화재 위험 등은 건물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므로 건물주가 즉각 보수해야 합니다.
- 임차인 부담: 임차인이 매장 내부에 냉동고를 과도하게 연결하여 허용 전력을 초과해 차단기가 내려가는 경우, 혹은 매장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추가로 설치한 조명과 콘센트에서 발생한 누전은 임차인이 비용을 들여 고쳐야 합니다.
💡 임대인의 수선의무와 법적 한계
민법 제623조가 보장하는 임차인의 권리
우리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임대차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대인이 단순히 건물을 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임차인이 장사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상가 건물의 상태를 유지 보수해 줄 법적 의무가 있음을 뜻합니다.
만약 건물의 중대한 하자로 인해 영업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한다면, 임차인은 수선을 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선이 완료될 때까지 임대료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판례로 보는 대규모 수선과 소규모 수선의 차이점
법원은 임대인의 수선의무 범위를 판단할 때 ‘대규모 수선’과 ‘소규모 수선’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세입자가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고장(예: 전등 교체, 문고리 수리 등)은 임대인의 수선의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반면, 이를 고치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에서 정해진 목적대로 상가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한 고장(예: 지붕의 누수, 보일러 시스템의 전면 교체, 건물의 구조적 균열 등)은 반드시 임대인이 자신의 비용으로 고쳐야 합니다.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건물주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 계약서 속 ‘독소 조항’ 방어하는 방법
수선의무 면제 특약의 유효성과 한계
많은 건물주가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 “건물 수리에 관한 모든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한다”거나 “상가 유지 보수는 세입자의 책임으로 한다”는 식의 특약 조항을 집어넣습니다. 저도 처음 계약할 때는 이 문구가 무서워서 고장이 나도 말 한마디 못 꺼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94다34692)를 보면, 이러한 특약이 있더라도 면제되는 수선의무는 소규모 수선에 한정됩니다. 건물의 주요 구성 부분에 대한 대수선이나 건물의 본질적인 구조적 결함까지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특약이 있더라도 대형 수도관이 파열되거나 건물 외벽이 무너지는 등의 대규모 하자는 여전히 건물주가 고쳐야 합니다.
계약 체결 시 반드시 넣어야 할 유리한 문구
가장 좋은 방법은 계약을 맺을 때 수선 책임의 범위를 미리 계약서 특약 사항에 명확하게 적어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냉난방기, 배관, 전기 시설 등 주요 설비의 노후화로 인한 교체 및 대수선 비용은 임대인이 부담하며, 점포 내부의 전등, 손잡이 등 소모성 자재의 교체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한다”와 같이 금액적 기준이나 시설물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서류로 박아두면 나중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필요가 전혀 없어집니다.
📈 최신 임대차 분쟁 동향과 현명한 대처법
비용 청구를 위한 필요비 및 유익비 개념 이해
상가를 운영하다 보면 내 돈을 들여 건물을 고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때 임차인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필요비’와 ‘유익비’ 청구권입니다.
- 필요비: 건물의 현상을 유지하거나 통상적인 관리에 필요한 비용(예: 터진 수도관 수리비)을 말하며, 이는 지출 즉시 건물주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유익비: 건물의 객관적 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투입한 비용(예: 엘리베이터 설치, 바닥 전체 교체 등)을 뜻하며, 이는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었을 때 건물의 가치 증가가 현존하는 경우에 한해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출한 비용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알고 영수증을 챙겨두어야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증거 수집과 내용증명을 통한 이성적인 대응 프로세스
건물주와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피하려면 시설 고장이 발견된 즉시 원칙에 따라 행동하셔야 합니다.
- 즉시 사진 및 동영상 촬영: 고장 부위와 피해 상황을 날짜와 시간이 나오도록 명확하게 촬영합니다. 수도 배관 동파라면 물이 새는 부위와 매장 내부 피해 규모를 모두 찍어둡니다.
- 건물주에게 즉각 통지: 전화보다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사진을 보내며 “어디에 고장이 발생했으니 확인해 달라”고 명확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건물주가 확인하지 않고 방치하여 피해가 커지면 그 확대된 피해에 대해서도 건물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 긴급 수선 후 영수증 보관: 건물주가 연락이 안 되거나 수리를 미룬다면, 우선 임차인이 비용을 들여 긴급 수선업체를 부른 뒤 ‘상세 견적서’와 ‘결제 영수증’을 반드시 챙겨두어야 합니다. 추후 임대인에게 이 비용을 청구하거나 임대료에서 공제(필요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됩니다.
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매장 양도를 고민하며 마음이 복잡한 시기인데, 이런 시설 고장까지 터지면 자영업자들은 정말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법은 생각보다 사장님들의 권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소모품이 아닌 건물의 본질적인 구조 문제는 임대인의 의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시고, 억울하게 자영업자의 지갑에서 큰돈이 나가는 일이 없도록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매장 시설 수선의무 분쟁 해결은 한국부동산원 임대차분쟁위원회에서 조정합니다.

